변호사만큼 알게되는 스토리 판례

노동법 스토리판례

무기계약직 임금 차등은 ‘사회적 신분’ 따른 차별…서울고법 판례 분석

변호사만큼 알게되는 스토리 판례 2026. 3. 16. 14:39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노동 이슈인 '무기계약직 차별'에 대해 매우 의미 있는 법리적 이정표를 세운 판결을 소개해 드립니다. 이 판결은 단순히 임금 차액을 지급하라는 결론을 넘어, 법원이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왜 '사회적 신분'으로 보았는지에 대한 치밀하고 구체적인 논리를 담고 있습니다. 변호사의 시각에서 이 사건의 핵심 쟁점과 판결의 무게감을 정리해 드립니다. (서울고등법원 2025. 12. 12. 선고 2024나2013287 판결)

 

무기계약직 차별을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로 본 판

1. 사건의 배경: "동일한 노동, 상이한 임금체계"

 

피고인 E사(종합 뉴스 프로그램 제작사)의 디자인센터에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고용형태에 따라 크게 '호봉직'과 '연봉직(무기계약직)'으로 나뉘었습니다.

 

호봉직: 공채 등으로 채용되어 호봉표에 따라 임금을 받는 직군입니다.

 

연봉직: 파견직이나 프리랜서로 근무하다가 계약직을 거쳐 기간의 정함이 없는 상태로 전환된 무기계약직군입니다.

 

원고들(연봉직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이 호봉직과 동종·유사한 업무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호봉직 대비 약 67~81% 수준의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은 차별이라며 소를 제기했습니다.

 

2. 핵심 쟁점: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이 될 수 있는가?

 

이 사건의 가장 큰 법리적 다툼은 "무기계약직이라는 지위가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금지하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가"였습니다. 피고 측은 고용형태가 개인의 선택에 따른 계약의 결과일 뿐 '신분'이 아니라고 항변했으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법원이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한 4가지 결정적 근거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사유를 들어 연봉직(무기계약직)이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고착화된 지위: 연봉직은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때 부여되는 지위로, 일단 이 지위를 얻으면 상위 집단(호봉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사실상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연봉직에서 호봉직으로 전환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했습니다.)

 

구조적 임금 격차: 임금 차이는 개인의 성과가 아닌, 회사가 설계한 '호봉제'와 '연봉제'라는 제도적 틀에서 발생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이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고착화되었습니다.

 

사회적 평가의 분리: 사내 게시판에 "능력이 미천하여 연봉직군이 된 것이 아니다"라는 글이 올라올 정도로, 연봉직은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 평가에서도 호봉직보다 낮은 집단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중간적 집단의 형성: 무기계약직은 비정규직보다는 안정적이지만 정규직보다는 열악한 처우를 받는 '중규직'이라는 별개의 지위로 우리 사회에 이미 자리 잡았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3. 업무의 동일성 판단: "본질적 차이가 없다면 같은 업무다"

 

회사는 호봉직이 관리자 후보군으로서 더 큰 책임과 권한을 가진다고 주장하며 차별의 합리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실제 수행한 업무'를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실제 업무 기준: 취업규칙상의 직무 정의가 아니라, 근로자가 실제로 매일 수행한 업무를 대조했습니다.

 

본질적 유사성: 업무의 범위나 권한에 일부 차이가 있더라도, 주된 업무 내용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면 '동종·유사한 업무'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결과: 디자인센터 내에서 호봉직과 연봉직이 혼재되어 근무하며 본질적으로 동일한 그래픽 제작 업무를 수행했음을 인정했습니다.

 

4. 이번 판결이 주는 메시지: "차별의 문턱을 넘다"

 

재판부는 무기계약직을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하는 것이 곧 모든 차등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이를 신분으로 인정함으로써 "기업의 경영상 재량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극단적이고 불합리한 차별에 대해 사법심사를 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것"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무기계약직은 모두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여 차별받으면 안 되는 건가요?

 

A1. 모든 무기계약직이 당연히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판결은 특정 직군이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판단 기준: 해당 사업장에서 정규직(호봉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중간적 처우를 받는지, 정규직으로의 이동 가능성이 사실상 봉쇄되어 있는지, 그리고 정규직보다 사회적으로 저평가받는 집단으로 고착화되어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봅니다.

 

결론: 이번 사건의 '연봉직 디자이너'들은 채용 경로가 다르고 호봉직으로의 전환 사례가 거의 없었으며, 사내에서도 별개의 계급처럼 인식되었기에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될 수 있었습니다.

 

Q2. "우리 팀은 호봉직이 더 중요한 일을 한다"는 회사의 주장은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나요?

 

A2. 법원은 회사가 정한 '직무 규정'보다 '실제 수행한 업무'를 우선하여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노동의 본질: 피고 회사는 호봉직이 미래의 관리자 후보군으로서 더 큰 책임과 권한을 가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그러나 실제 업무 현장을 조사한 결과, 호봉직과 연봉직이 같은 팀에 섞여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그래픽 제작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법원은 업무의 범위나 권한에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주된 업무 내용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면 '동종·유사한 업무'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Q3. 채용 경로(공채 vs 수시채용)가 다른데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이 왜 불법인가요?

 

A3. 채용 경로의 차이가 '임금 차별'의 합리적 이유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경영 재량의 한계: 기업은 유능한 인재 확보를 위해 임금 체계를 다양하게 설정할 재량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차등의 정도가 노동의 가치와 무관하게 고착화된 신분에 기인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격차의 합리성 상실: 이번 사건에서 연봉직의 임금은 호봉직의 약 67~81% 수준에 불과했고, 시간이 지나도 이 격차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단순히 "뽑은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 정도의 극심한 임금 차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 노동 임변의 생각

 

이번 판결은 "계약의 형식이 신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고용 계급도'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기업으로서는 단순히 채용 경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임금 격차를 정당화하기 어려워졌으며, '직무의 본질적 가치'에 기반한 공정한 보상 체계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유사한 고용 구조 속에서 차별을 겪고 계신 근로자나, 인사 관리 체계를 점검해야 하는 기업 담당자분들께 이번 판례는 매우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입니다.

전화: 010 2752 0719

메일: eyelid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