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만큼 알게되는 스토리 판례

노동법 스토리판례

그룹 내 이직 확정 후 '잔류 의사' 표시, 법적 철회권 인정될까?

변호사만큼 알게되는 스토리 판례 2026. 3. 25. 17:45

이번에 다룰 사례는 글로벌 기업의 내부 이직 시스템인 'D 제도(워크데이)'를 통해 자회사로 자리를 옮기려다 변심한 재무 담당자 A씨의 이야기입니다. 사직서를 직접 쓰지 않았더라도, 그리고 중간에 마음을 바꿨더라도 '이미 떠난 마음'이 법적으로 어떻게 평가되는지,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서울행정법원 2025. 11. 6. 선고 2024구합93343 판결)

 

 

[판례 스토리] "이직 취소할게요!"... 하지만 회사는 "이미 늦었습니다"

 

1막: 설레는 새로운 도전, '오퍼 레터'에 서명하다

 

초국적 기업 C 그룹의 계열사인 B 주식회사에서 재무 담당자로 일하던 A씨. 그는 그룹 내 인재 영입 제도인 D 제도를 통해 같은 그룹 산하의 또 다른 한국 법인인 J사의 재무 전무(Finance Director) 자리에 지원합니다.

 

치열한 면접 끝에 2023년 11월, A씨는 J사로부터 합격 통지와 함께 오퍼 레터(Offer Letter)를 받습니다. 아들의 겨울방학 일정까지 고려해 입사일도 조정하는 세심함을 보이며, A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회신합니다.

 

"J사에서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됩니다. 근로계약 청약을 승낙합니다!"

 

2막: "저 다음 주에 갑니다" 공식화된 이직

 

2023년 11월 14일, A씨는 직속 상사인 O 부사장에게 기쁜 소식을 알립니다. "지난주에 근로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1월부터 J사로 합류합니다."

 

이 보고는 즉시 C 그룹 본사 CFO와 인사 책임자들에게 공유되었습니다. 회사는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A씨의 후임자를 승진 발령하고, 업무 인수인계 계획을 확정하여 전 직원이 참여하는 월례 회의에서 이 사실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A씨 역시 본인의 후임자에게 업무를 가르쳐주며 떠날 준비를 마쳤죠.

 

3막: 뒤바뀐 마음, "가족과 건강 때문에 못 가겠습니다"

 

그런데 이직을 불과 한 달 남짓 앞둔 11월 29일, A씨는 돌연 마음을 바꿉니다. 개인적인 건강과 가족 문제를 이유로 "다시 생각해보니 B사에 잔류하고 싶다"며 이메일을 보낸 것입니다.

A씨는 상사에게 "잔류를 허락해 줘서 고맙다"며 기정사실로 하려 했지만, 회사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본사 CFO의 반응: "우리는 이미 인력 재배치를 끝냈습니다. 원고(A씨)는 마치 계속 근무할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는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는 다른 직원들에게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자리는 이제 없습니다."

 

4막: 법정 공방 - "해고인가, 자발적 퇴사인가?"

 

결국 회사는 A씨가 예고했던 이직 날짜에 맞춰 근로관계를 종료했습니다. A씨는 이를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며 법정 싸움을 시작합니다.

 

A씨의 주장: "직접 사직서를 쓴 적도 없고, 단지 이직 협의 과정에서 정보를 전달했을 뿐이다. 설령 사직 의사였다 해도 이직이 무산되었으니 철회할 수 있어야 한다!"

 

법원의 판단: "원고 기각(회사의 승리)"

 

⚖ 핵심 법리: 왜 '사직서'가 없어도 사직인가?

 

법원은 이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사직 의사표시의 해석'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1. 행위 자체가 '해약 고지'다

 

사직서라는 형식이 없더라도, 겸직이 금지된 다른 회사(J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현 직장에 알린 행위는 "현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명확한 근로계약 해지의 의사표시(해약고지)로 보아야 합니다.

 

2. 도달한 사직 의사는 마음대로 철회할 수 없다

 

사직의 의사표시가 사용자(회사)에게 도달하여 유효하게 수리되었다면, 근로자는 사용자의 동의 없이 이를 일방적으로 철회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사건처럼 회사가 후임자를 정하고 조직 개편까지 마친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3. 글로벌 그룹 내 이직도 '신규 채용'이다

 

D 제도 같은 그룹 내 이직이라 하더라도 법인이 다르다면 이는 단순한 보직 변경이 아닌 '기존 회사와의 퇴사'와 '새 회사와의 입사'가 결합된 과정입니다. 따라서 이직을 철회한다고 해서 전 직장으로 자동 복귀되는 것이 아닙니다.

 

💡 노동 임변의 한마디

 

많은 직장인분이 "사직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법원은 근로자의 구두 보고, 이메일, 그리고 이직 준비를 위한 인수인계 참여 등을 종합하여 사직의 의사를 엄격하게 판단합니다. 특히 조직 규모가 크고 후임자 인사가 얽혀 있는 경우, 한 번 뱉은 사직의 말은 법적으로 되돌리기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내부 이직 논의가 곧장 사직의 의사표시로 평가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① 오퍼레터에 ‘본사 승인 전까지 무효’ 조건이 명시된 경우, ② 기존 회사에 이직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리기 전 단계인 경우, ③ 후임자 선임이나 조직 개편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경우, ④ 인수인계나 퇴사 준비 행위가 전혀 없는 경우 등에는 사직 의사표시의 ‘도달’이나 ‘수리’가 부정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혹시 비슷한 상황에서 회사와 잔류 협상을 고민 중이신가요? 여러분의 상황이 이 판례와 어떻게 다른지, 노동 임변과의 상담을 통해 분석해보세요.

전화: 010 2752 0719

메일: eyelid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