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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스토리판례

정년 후 촉탁직 재고용에도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가

변호사만큼 알게되는 스토리 판례 2026. 5. 11. 13:42

서울행정법원 2025구합53964 판결

임주환 변호사의 스토리 판례 : 정년 후 촉탁직 재고용에도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지에 대한 판결

 

판결의 의의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2026년 4월 9일, 정년 도과 후 체결된 촉탁근로계약의 만료 통보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본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을 유지하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이 판결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첫째, 정년 도과를 이유로 한 사직서 제출과 촉탁계약 체결을 거쳤음에도 종전 근로관계와의 단절을 인정하지 않고 갱신기대권의 존속을 인정한 점입니다. 둘째, 시용근로자용 평가표를 일부 수정해 정년 후 촉탁직 재고용 평가에 사용한 행태를 객관성·합리성 결여로 본 점입니다.

사실관계

근로자 B는 2018년경 공동주택관리업을 영위하는 원고 회사에 입사해 청주시 소재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기전대리(직종: 기술직)로 근무했습니다. B는 6개월~1년 단위로 8회에 걸쳐 근로계약을 갱신했고, 갱신 시마다 별도의 평가 절차는 없었습니다. 월 임금은 270만 원에서 단계적으로 인상되어 352만 원에 이르렀습니다.

 

2023년 11월 23일, 원고는 취업규칙을 개정해 정년을 만 65세에서 만 62세로 단축했습니다(아파트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거침). 곧 정년 문턱에 있던 B는 회사가 마련한 절차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하고 촉탁채용원에 자필 서명한 후, 2024년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6개월간의 촉탁근로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신분은 '촉탁계약직', 직책은 '관리부장'(직종은 기술직 유지), 월 임금은 380만 원이었고, 계약서에는 "정년퇴직 후 재고용되는 경우 종전의 근속기간은 계속근로기간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이 들어갔습니다.

 

계약 종료 무렵 관리과장과 관리소장이 업무적격성 평가를 실시했고, 평가 평균은 45.5점으로 재계약 기준점인 70점에 미달했습니다. 원고는 2024년 6월 25일 만료 통보를 했고, B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해 충북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모두 인용 판정을 받았습니다. 원고가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 이 사건입니다.

쟁점 1: 신규채용인가, 갱신인가

원고는 이 사건 촉탁계약이 종전 8차례 갱신된 근로계약과 단절된 신규채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근거는 ① 직책이 기전대리에서 관리부장으로 2단계 상승한 점, ② 월 임금이 28만 원 인상된 점, ③ 계약기간이 6개월로 단축된 점, ④ B 본인의 사직서·촉탁채용원 자필 서명입니다.

 

법원은 다음 사정들로 단절을 부정했습니다. 직종이 기술직으로 동일하고 실제 수행 업무가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 종전에도 6개월짜리 계약이 3차례, 9개월짜리 계약도 있었으므로 6개월 계약 자체가 단절의 표지가 될 수 없다는 점, 종전 갱신 시마다 임금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해 왔으므로 28만 원 인상도 그 연장선상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주목할 판시는 사직서의 진의에 관한 것입니다.

 

"B가 사직서를 제출하였더라도 이는 진정한 의미의 사직서라기보다는 정년 도달 후 촉탁직 재고용을 위한 사전 절차의 일환으로 봄이 타당하다."

 

사용자가 정년 후 촉탁계약 체결 시 의례적으로 받는 사직서·촉탁채용원이 그 자체로 종전 근로관계의 단절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부분입니다. 실무에서 사용자 측이 가장 강하게 의지하는 카드를 정면에서 무효화한 판시로, 향후 유사 사건에서 자주 인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쟁점 2: 갱신기대권의 인정 근거

원고는 취업규칙에 갱신에 관한 명문 규정이 없으므로 갱신 여부는 사용자의 재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명문 규정 없이도 객관적 정황과 신뢰관계로 갱신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대법원 법리(대법원 2023. 6. 29. 선고 2018두62492 판결 참조)에 따라 다음 사정들을 종합했습니다.

 

8차례 갱신이 별도 평가 없이 이루어졌고 원고 스스로 지노위 심문에서 "사실상 무기계약직"이었다고 진술한 점, 2023년 11월 23일 자 취업규칙 개정으로 정년에 도달한 다른 근로자들(F 기전과장, G 방재과장, H 기전기사 등)이 사직 의사를 표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간제·촉탁직으로 고용·갱신된 점, 원고가 2024년 3월 28일경 아파트 위탁관리계약을 2027년 6월 30일까지 갱신해 사업장이 지속되는 점, 관리부장의 시설관리 총괄 업무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업무인 점입니다. 법원은 "원고와 B를 비롯한 원고 근로자들 사이에는 정년 도래 후라도 기간제근로자로 재고용될 수 있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쟁점 3: 갱신거절의 합리적 이유 — 평가의 객관성·합리성

가장 흥미로운 쟁점입니다. 회사가 B 평가에 사용한 양식은 사실 **시용근로자용 평가표(취업규칙 [별표 3])**였습니다. 회사는 이 양식의 제목을 '시용기간 중 업무적격성 평가'에서 '재계약 관련 업무적격성 평가'로 변경하고, 시용 관련 단서("시용기간 만료 전 1회 이상 평가", "평가결과 70점 미만 시 근로계약 해지" 등)를 삭제해 사용했습니다.

 

원래 정년 후 재고용 또는 계약 갱신에 적용되어야 할 평가는 취업규칙 제9조 제1항(근무태도·건강상태·인원의 필요성·입주민의 의견)과 제11조 제7항([별지 2]의 인사고과평가)이었습니다. [별지 2]는 전문지식·학습능력·관리능력·판단력·통솔력·책임성·유대관계·신뢰성·건강상태·복무상태를 평가항목으로 정하고 있는데, 회사가 실제 사용한 [별표 3]은 평가항목과 세부 구성요소, 배점이 모두 달랐습니다.

 

법원은 ① 평가방법·절차·갱신 기준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점, ② 평가의견("편 가르기", "근무 부적합")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부족한 점, ③ 취업규칙 제9조 제1항이 명시한 평가요소(건강상태, 입주민 의견 등)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평가의 객관성·합리성을 부정했습니다.

실무 시사점

본 판결은 정년 단축이 확산되고 촉탁직 재고용이 일반화되는 현 시점에서 세 가지 실무 좌표를 제시합니다.

 

첫째, 사용자가 정년 후 촉탁계약 체결 시 형식적으로 받아두는 사직서·촉탁채용원이 그 자체로 종전 근로관계의 단절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정년 전후의 업무 동일성, 재고용 관행, 사업장 지속성 등 실질이 우선합니다. 둘째, 갱신기대권 인정에 명문 규정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반복 갱신, 평가 없는 자동 연장, 동료들의 재고용 패턴, 업무의 지속성 등 객관적 정황이 핵심입니다. 셋째, 갱신거절의 근거가 된 평가의 합리성은 (i) 적용 대상에 맞는 평가표를 사용했는지, (ii) 취업규칙이 정한 평가요소가 반영되었는지, (iii) 평가 기준이 사전에 고지되었는지, (iv) 평가의견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있는지에 따라 판단됩니다. 시용근로자용 평가표를 변형해 사용한 본 사건의 행태는 가장 명확한 패착입니다.

 

기간제법 제4조 제1항 단서 제4호는 고령자고용촉진법상 고령자와의 근로계약을 2년 초과 사용 가능 사유로 정하고 있어 정년 후 촉탁직의 반복 갱신은 법적으로 허용됩니다. 다만 그 갱신·갱신거절의 적법성은 본 판결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심사된다는 점, 실무에서 유념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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