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믿고 서명했던 수많은 재임용 계약서들. 그 서류들이 정당한 임금을 갉아먹는 족쇄가 된다면? 학교 측은 이를 '권리의 포기'라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형식에 가려진 실질의 왜곡'이라 규정했습니다. 사립대 교수 임금 미지급 사건에서 부산고등법원이 어떻게 1심을 뒤집고 교수님들의 손을 들어주었는지, 그 날카로운 법리 반전의 드라마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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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입】 20년의 헌신, 그리고 뒤늦게 발견한 임금 차액
강단에서 20년 가까이 후학을 양성해 온 두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학교를 믿고 교육에만 전념했던 그분들이 어느 날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합니다. 자신들이 받아 온 임금이, 학교 규정에 명시된 기준보다 해마다 훨씬 낮게 산정되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괴로운 것은 학교의 반응이었습니다. "매년 계약서에 서명하셨잖아요." 그 한 마디가 20년의 신뢰를 흔들었습니다. 과연 서명 한 번으로 모든 권리가 소멸하는 것일까요? 법원의 답은 명확했습니다.
【전개】 두 가지 규정, 두 가지 세계관
법정에서 원고(교수)와 피고(학교법인)의 주장은 팽팽히 맞섰습니다.
원고의 주장
"학교의 교원연봉제규정은 공무원보수규정 봉급표를 기준으로 기본급을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이를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만든 낮은 봉급표를 적용해 임금을 과소 지급했습니다. 그 차액을 지급해야 합니다."
피고의 주장
"연봉제규정은 보수규정을 보충하는 참고 자료일 뿐입니다. 설령 공무원보수규정을 참고하더라도, '당해 연도'를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교수님들은 재임용 때마다 변경된 조건으로 계약을 새로 체결하고 서명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①어느 규정이 우선 적용되는가, ②학교가 2005·2007년에 바꾼 규정은 유효한가, ③매년 재임용 계약을 체결했다면 법리가 달라지는가.
【절정 1】 특별 규정은 일반 규정을 이긴다 — 그리고 '당해 연도'가 기준이다
부산고등법원은 먼저 어느 규정이 우선 적용되는지를 정리했습니다.
학교에는 두 종류의 보수 규정이 있었습니다. 교직원 전체에게 적용되는 '보수규정'과, 정년트랙 전임교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원연봉제규정'입니다. 학교 규정류관리규정 자체에 "특별법 우선의 원칙"을 따른다고 명시되어 있었고, 법원은 이 원칙대로 교원연봉제규정이 우선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다음으로, 연봉제규정에서 말하는 '공무원보수규정'이 어느 연도의 것인지가 쟁점이었습니다. 법원은 여러 근거를 들어 당해 연도의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핵심 근거: 연봉제 시행 전 공청회 배포 자료집에 "현 교육공무원(대학교원) 본봉 봉급표 100% 적용(매년 인상분을 반영한 봉급표)"이라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연도를 특정하지 않는다는 학교 측 주장과는 달리, 제정 당시부터 당해 연도 적용이 전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피고는 연봉제규정 시행 초기(2002~2003년)에 당해 연도 공무원보수규정을 적용해 급여를 지급했었습니다. 이를 뒤집어 '연도 무관'으로 해석하면 사용자가 사실상 임금을 임의로 동결·삭감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현저히 불합리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절정 2】 "재계약했으니 새 규정 적용" — 연쇄적 근로관계 법리의 반론
피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원고들은 재임용 때마다 계약서에 서명했으므로, 2005·2007년에 개정된 연봉제규정(이하 '개정 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 주장은 법적으로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해도, 변경 이후 새로 근로관계를 맺은 근로자에게는 변경된 규정이 적용된다는 것이 확립된 대법원 판례(91다45165 전원합의체)입니다. 피고는 이 논리를 활용한 것입니다.
법원의 반론: 이 사건은 '새 계약'이 아니다
부산고등법원은 이 사건 원고들에게 '연쇄적 근로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위 대법원 선행 판례는 이 사건에 적용될 수 없다고 명확히 했습니다.
연쇄적 근로관계란, 형식상 기간제 임용계약이 반복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최초 임용 시점부터 하나의 계속적 근로관계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는 법리입니다. 이 경우, 무효인 취업규칙 변경은 최초 임용 시점부터 계속 효력이 없고, 원래의 유효한 취업규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법원이 연쇄적 근로관계를 인정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백 기간 없는 연속 재임용 — 원고들은 최초 임용 이후 단 한 번도 공백 없이 재임용이 이어졌습니다.
실질적 재임용 탈락자 '없음' — 21년간(2005~2025) 정년트랙 전임교원 중 재임용을 희망했음에도 실제로 탈락한 교원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탈락처리된 6명 중 3명은 스스로 재임용을 원하지 않았고, 나머지 3명은 복직되거나 임의로 재임용되었습니다.
재임용 심사의 형식성 — 심사는 사실상 논문 실적이라는 형식적 지표 외에는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근속수당의 연속 지급 — 재임용 여부와 무관하게 최초 임용일부터 근속기간을 합산하여 정근수당과 정근수당가산금이 지속적으로 지급되었고, 재임용 시 퇴직금도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처럼 임용기간이 사실상 형식에 불과했음을 종합적으로 인정하면서, 원고들에게는 2005·2007년 개정 규정이 아니라 최초 임용 당시의 원래 연봉제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래도 계약서에 서명했다면? — '유리의 원칙'으로 이중 방어
법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설령 피고 주장처럼 재임용 계약에서 개정 규정을 '수용'한 것으로 보더라도 결론은 같다고 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97조(유리의 원칙):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 부분은 무효이고, 무효가 된 부분은 취업규칙에 따릅니다. 개정 규정이 무효인 이상, 유효한 원래 연봉제규정이 근로계약(재임용 계약)에 우선하여 적용됩니다.
계약서에 서명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유효한 취업규칙에서 정한 최저 기준 이하의 근로조건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결말】 법원의 판단: 1심을 뒤집고 원고 전부 승소
1심은 피고(학교)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공청회 자료집을 오독하여 '당해 연도 적용이 필수는 아니다'라는 취지로 판시했고,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항소심인 부산고등법원(2025. 12. 18. 선고)은 1심 판결을 전부 뒤집었습니다.
원고 A: 미지급 임금 214,064,250원 + 지연손해금
원고 B: 미지급 임금 155,494,810원 + 지연손해금
이 판결은 단순히 임금 차액을 돌려준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해마다 계약서에 서명하게 함으로써 불법적인 임금 삭감을 기정사실화하는 관행에 법원이 정면으로 제동을 건 것입니다. '서명했으니 끝'이라는 논리는, 취업규칙이라는 법규범 앞에서 통용되지 않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 (FAQ)
Q1. 학교가 규정을 바꾸면서 교수들에게 불리해졌는데, 왜 무효인가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반드시 근로자 과반수(또는 과반수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근로기준법 제94조). 이 사건에서 학교는 2005년과 2007년 연봉제규정을 개정해 연봉 상한제를 도입하고 기본급 산정 기준을 낮췄지만, 정년트랙 전임교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를 이유로 개정 규정이 기존 교원들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Q2. 매년 연봉 계약서를 새로 썼는데, 이제 와서 다툴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 근로기준법 제97조(유리의 원칙)에 따라, 개별 근로계약(연봉 계약서)의 내용이 유효한 취업규칙(원래 연봉제규정)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하다면 그 부분 무효이고, 취업규칙이 정한 기준이 적용됩니다. 계약서에 서명했더라도 그 내용이 상위 규정에 못 미치면 차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연봉 계약서에는 '교원연봉제규정에 의거하여 계약한다'고만 되어 있었을 뿐, 어느 연봉제규정(원래인지, 개정인지)을 따른다는 특정이 없었습니다. 법원은 이 계약서가 불이익 변경된 규정의 수용 의사를 명확히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Q3. '연쇄적 근로관계'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무효가 되면 기존 근로자는 보호받지만, 변경 이후에 새로 입사한 근로자에게는 변경된 규정이 원칙적으로 적용됩니다(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 학교 측은 '재임용 계약은 새 계약이므로 개정 규정이 적용된다'고 이 논리를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이 사건 원고들에게 '연쇄적 근로관계'를 인정했습니다. 재임용 계약이 형식적으로 반복되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최초 임용부터 단절 없는 하나의 근로관계가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21년간 재임용 희망자 중 실제 탈락자가 사실상 없었고, 퇴직금 정산도 없었으며, 근속수당은 재임용과 무관하게 계속 누적된 점 등이 그 근거였습니다.
연쇄적 근로관계가 인정되면, 무효인 개정 규정은 최초 임용 당시부터 계속 효력이 없으므로, '재계약했으니 개정 규정이 적용된다'는 사용자 주장이 차단됩니다.
Q4. '공무원 보수규정을 준용한다'는 문구가 어느 연도를 기준으로 하는 건가요?
법원은 당해 연도의 공무원보수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규정 문언에 연도가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해의 공무원보수규정이 기준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인식에 부합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연봉제규정 제정 직전의 공청회 자료집에 '매년 인상분을 반영한 봉급표'를 적용한다고 명시되어 있었고, 직원연봉제규정과 달리 교원연봉제규정만이 굳이 '공무원보수규정 별표 12'를 기준으로 삼은 이유도 교원지위향상법이 정한 공무원 수준 보수 유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임의 연도로 해석하면 학교가 사실상 교원 임금을 영구 동결할 수 있게 되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법원은 보았습니다.
Q5. 오래된 미지급분도 받을 수 있나요? 소멸시효는 어떻게 되나요?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입니다(근로기준법 제49조). 소를 제기한 시점으로부터 역산하여 3년 이내의 미지급분만 청구할 수 있고, 그 이전 분은 시효 완성으로 청구가 불가능합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은 소장 부본 송달일(2021. 12. 8.)로부터 역산한 2018년 11월분부터 청구하였고, 법원은 그 전부를 인용했습니다.
참고로, 연쇄적 근로관계는 소멸시효와 무관합니다. 그것이 해결하는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재임용 계약을 반복할 때마다 불이익하게 변경된 규정이 새로 적용되는 것을 막는 것, 즉 최초 임용 당시의 유리한 규정을 계속 유지시켜 주는 역할입니다.
💡노동 임변의 한마디
권리 위에 잠자지 마십시오.
오랜 기간 받아 온 임금이 실은 규정에 못 미쳤다면, 서명이 반복되었다고 해서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판결이 보여주듯, 법은 형식보다 실질을, 계약서 문구보다 규범의 최저 기준을 우선합니다. 법률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여러분의 권리를 정확하게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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